수학

기하학 역사

생각 나무 2016. 9. 6. 23:25

>>BC 5C, Herodotus의 <역사>

“모든 이집트인에게 네모난 토지square를 나누어 경작하게 했는데, 나일 강이 범람해 토지경계가 교란되자, 왕이 관리를 보내어 토지의 감소분을 측량케 하여 합당한 납세율로 세금을 바치게 했고, 이러한 동기에서 기하학(측량술)이 창설되고 후에 그리스로 전파되었다”

>> 실용성을 넘어 논증기하학을 도입한 시기는 고대 그리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Thales의 삼각형과 원에 관한 이해, 피타고라스의 증명, 유클리드의 <원론>

>> 오늘날 기하학은 공간에서 도형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이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수학은 기하학으로 간주되었다. 

>>대수학(수를 대신해 문자를 이용해 방정식을 푸는데서 기원)은 중세 말경 중동에서 유럽으로 소개됬고 른상스 시대에 더욱 발전했다. 기하학은 17~18세기 해석학(미적분학의 분석에서 시작된 수학의 한 분야, 수열이나 함수의 극한 및 무한 급수미분적분측도 및 해석함수 등의 개념을 다룬다.)이 발전하며 대수학 및 해석학과 동등해졌다. 

기하학적 도형은 해석기하학 방법인 좌표를 이용하여 대수학적 도는 해석학적으로 다룰 수 있다. 

>> 17세기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의 기초를 닦았다. 18세기에는 오일러가 2차 곡선에 대한 대수적 이론을 확립하였고 아폴로니우스는 그 보다 앞서 원추곡선으로 2차 곡선을 연구했다. 18세기 말경 해석학은 기하학에 응용되며 미분기하학이 형성되었고 몽주는 미분기하학의 선구로 간주 된다. 

>> 좌표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도형을 다루는 기하학을 종합기하학이라 한다. 17세기, 데자르그와 파스칼이 연구한 사영기하학은 종합기하학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영기하학은 19세기 들어 퐁슬레와 카르노 등 많은 수학자들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 유클리드의 평행공준은 고대부터 비평이 대상이 되어 왔다. 19세기 들어 볼리아이와 로바체프스키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선험적 정당성을 거부하며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발표했고 클라인, 푸앵카레, 벨트라미 등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영기하학을 바탕으로 만든 모형을 이용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논리적 무모순성을 입증했다.

>>1872년 클라인은 군의 개념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성질을 군론적 입장에서 밝혔다. 

<Erlangen program>

" 기하학이란 주어인 변환군에 속하는 임의의 변환에 대하여 불변인 도형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1854년, 리만은 괴팅겐 대학 취임 강연에서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정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기하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오늘날 리만 기하학인 미분가능 다양체는 오늘날 수학의 많은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 1899년 힐베르트는 유클리드 <원론>의 공리계를 재검토하여 <기하학의 기초>를 저술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수학을 공리적론적 경향으로 유도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 원추곡선 연구로 출발한 대수적 곡선에 관한 연구는 오늘날 대수적 기하학인 대수적 다양체론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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